강원도 원주시 신림(神林)면, "신들의 숲"이라 불리는 이곳은 원주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습니다. 더 이상 기차가 오지 않는 신림역, 학생들이 모두 떠난 신림의 작은 학교는 이제 듬성듬성 놓여진 기찻길 침목처럼 그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. 때로 세상의 속도는 우리의 소중했던 장소와 그리운 시간들을 부수고 지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.
살아지는
여기 살아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.
지난 80여 년간 그 자리를 끊임없이 살아왔을, 사람들의 수많은 풍경을 지켜왔을 신림역과 학교의 문을 다시 활짝 열고자 합니다. 할매발전소는 개관 두 번째 가을을 맞으며, 故박갑선 할머니(1920-2023)의 이야기를, 할머니들의 손으로 옮겨진 기억의 얼굴들,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잡아본 할머니의 붓, 어머니의 어머니로 이어지는 오래된 미래를 담았습니다.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있고, 그 장소가 언제고 찾을 수 있는 거리에 있음은 우리의 일상을 살아지게 하는 버팀목이 됩니다. 희미하게 놓인 침목(버팀목)들을 다시 한데로 모아, 여러분들이 오실 그 기찻길을 밝혀두겠습니다.
언제나 있었던 ( )
누군가에게 이 빈칸은 부르고 싶은 이름이고, 영원히 머물고 싶은 시절이며, 기억 속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공간입니다.
본 전시가 각자의 앞에 놓여진 ( )으로 그리운 이름과 손잡고 떠나는 긴 소풍이 되었으면 합니다. 이 빈칸은 할머니가 우리에게 보내는 아주 오래된 질문들에 대한 답장이며, 초대장입니다. 언제고 이곳으로 도착해 주시기를 내내 마중하겠습니다.